철학이 필요한 시간 1

2012. 3. 11. 18:20 from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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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강신주 (사계절,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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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란 무엇인가 -나가르주나[중론]

만약 모든 존재를 자성(自性)을 가진 실체로 본다면 그대는 존재가 인연이 없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어떤 존재도 인연으로 생겨나지 않은것은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존재도 공(空)하지 않은것이 없다                  [중론]

자성이란 불변하는 자기동일성을 나타내는 불교의 전문 용어이다. 나가르주나는 지금 두가지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불변하는 동일성이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모든 것들을 인연의 마주침으로 생긴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 나가르주나에 따르면 이 후자의 시선은 공을 깨달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없는데 어찌 나의 것이 있을 것인가, 나와 나의 소유가 없으므로 그는 나라는 의식도 없고 소유하려는 의식도 없는 자가 된다(.....)안으로나 밖으로나 나라는 생각이 없고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집착은 없어질 것이다  -[중론]

나가르주나가 말한 '나'는 일상적인 의미의 '나'는 아니다. 여기서 '나'는 아트만이라고 불리는 불변하는 자아를 말한다, 유년시절의 나는 청년시절의 나와 다르고, 청년시절의 나는 분명 노년의 나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경우나 '나'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변하는 '나'가  있을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문법적착각으로 생긴 불변하는 자아가 없다는 것, 이것이 나가르주나가 말하고자 한 것이다.
 '내가 없다'는 주장은 부정적으로 '내가 공하다'고 표현된다. 이 주장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나는 수많은 인연들의 마주침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가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마저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연이 되어서 나에게 왔고, 인연이 다해서 나로부터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나 내가 가진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가르주나의 핵심적인 전언이다. 이제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자. 주름진 얼굴마저도 무수한 인연의 마주침으로 만들어졌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읅은 어부의 주름에는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면서 생긴 인연이 새겨져 있고, 나이든 농부의 주름에는 땅과 싸우면서 생긴 인연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주름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고유한 향내를 풍기는 아름다운 꽃과 같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가? 인연이 다해서 사라진 젊음에 집착하느라, 인연의 새로운 마주침으로 생긴 근사한 주름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이 들어 주름진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젊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주름을 보면서 자신이 마주쳤던 수많은 인연들을 떠올리는 삶, 그것은 젊고 탱탱한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사유의 의무 -아렌트[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전범으로서 수배를 받고 있던 이이히만은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강제송환된다. 마침내 1961년 12월 그는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혐의로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아렌트는 [뉴요커]지의 특파원으로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 재판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녀의 결론에 따르면, 이이히만은 악의에 가득차 있는 잔혹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히만은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꺠닫지 못한 것이다. (....)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 였다. (...)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우라 상실의 시대 -벤야민[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순간, 이산, 그리고 이 나뭇가지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산이나 나무가지의 아우라가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비슷비슷한 경치를 보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날, 그리고 어떤 장소에서 앞으로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풍경에 직면할 때가 있다. 바로 '여기 그리고 지금' 에 있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던 매혹적인 경치를 만난 것이다. 물론 몸과 마음상태, 시간, 기후, 습도, 채광, 바람의 세기 등등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진 다면 이런 황홀한 경험은 불가능할 것이다. 어느 순간 어떤 사물이나 풍경이 나를 강렬하게 매혹시킬 때, 우리는 그것이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래서 어떤 것에서 아우라를 느끼는 순간은 동시에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나리자가 아니어도 좋다. 주변의 작은 것에서도 아우라를 느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무더운 여름 하늘 위를 떠가는 구름에서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에서도, 아니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에서도, 아우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Posted by ♥lala :